[전진표 기자]
17일 서울고법은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대한 특검의 기피 신청을 기각하였다.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에 충분한 상황에서 특검이 대단히 이례적으로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을 했음에도 법원이 이를 기각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였다.
특히 기피신청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를 양형사유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는 법인과 개인을 구분하지 못한 무식의 소치와도 같은 판단이다. 재판부도 지적했듯 “준법감시제도의 목적은 기업 스스로가 준법경영을 하도록 함으로써 기업범죄나 비리 등 위법행위를 사전적, 자율적으로 예방”하는 것이다. 즉, 횡령·배임 등 범죄의 피해자인 회사가 도둑이 들지 않도록 경비 시스템을 마련·강화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갖췄다는 이유로 회삿돈을 훔친 도둑의 형을 감경한다는 것은 얼마나 코미디같은 일인가? 회사의 준법감시제도를 총수의 양형요소로 고려해도 된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이처럼 비상식적인 주장에 불과하고 특히 정준영 부장판사가 사례로 든 미국의 양형기준은 개인의 처벌이 아니라 기업의 처벌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기업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 기업의 준법감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범죄 후의 진지한 반성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나, 총수 개인이 범죄를 저질러 기업에게 피해를 입힌 이 사건에 적용할 바는 아니다. 또한 현행 상법상 감사(위원회) 제도가 이미 확립되어 있으며, 나아가 자산총액 5천억원 이상인 상장회사는 준법통제기준을 마련하고 준법지원인을 설치할 의무가 있다. 법률상의 의무를 이행했다고 해서 개인 처벌을 감형하는 것은 비상식적일 뿐 아니라, 법원이 현행 제도를 무시하고 총수가 임의로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면 양형에 고려하겠다는 것은 법률의 적극 해석을 넘어서 입법에 버금가는 수준의 월권에 나서는 것이며 무엇보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이재용 부회장이 만든 임의기구에 불과하여 정보접근권 등 권한이 전혀 보장되지 않으며,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또한, 처음에 만들 때 이재용 회장이 임의로 만들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없앨 때도 아무런 제약 없이 언제든 해산시킬 수 있다. 법원은 진심으로 이러한 조직의 설치가 긍정적 양형사유라고 판단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만약 준법감시위원회에 권한이 주어지고 이재용 부회장이 그 권고를 적극 수용하더라도, 이는 재벌체제의 개혁과 관련해 전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이사회나 감사위원회 등의 법적 기구를 거치지 않고 총수 마음대로 그와 같은 조직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총수가 현행법의 이사회 제도를 형해화하며 전횡적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줄 뿐이다. 정준영 부장판사 역시 시정이 필요하다고 했던 ‘재벌폐해’가 시정되기는커녕, 재벌체제 문제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총수의 전횡이 한 치도 시정되지 않은 것이다.
본 의원은 20여 년간 재벌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활동해 온 입장에서, 재벌총수일가도 죄를 지으면 대가를 치른다는 상식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년간 해 온 노력을 법원이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되돌리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 나아가 이번에 법원이 초래한 논란으로 인해 마치 준법감시기구가 재벌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전부인 양 취급되어, 별 실효성도 없는 준법감시기구에 대한 논의에 매몰된 나머지, 정작 정말로 권한과 책임을 올바로 세우는 주주권 강화·이사회 정상화 등 근본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는 차질을 겪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특검은 이번 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는 재판부는 집행유예 선고를 위한 무리한 시도를 중단하고, 법률과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을 해야 마땅하다.
당부하건대 사법부는 오직 사법정의와 법치주의만을 고려하기 바란다. 사법부가 판결을 내림에 있어서 어설프게 경제와 경영을 걱정하는 것은 실상 경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거니와 나아가 사법정의와 법치주의를 위협하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