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가 13일오후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대타협에 합의한 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과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13일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대타협에 합의하면서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대타협에는 일반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통상임금 범위,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실업급여·산재보험 강화 등 향후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핵심 내용이 담겼다.
최대쟁점이었던 ‘일반해고’란?
일반해고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23조를 둘러싼 논쟁이다. 근로기준법 23조에서 근로자의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다 보니 사측에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방법은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두 가지로 제한됐다. 징계해고는 근로자가 횡령 등 개인적인 비리나 심각한 법규 위반을 저질렀을 경우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리해고는 기업의 경영사정이 극도로 악화됐을 때 근로자의 대규모 해고를 가능케 한다. 일반해고는 이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처럼 저성과자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직원을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 노사정은 법과 판례를 바탕으로 가이드라인(행정지침)을 만든 후 법제화를 추진키로 했다.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취업규칙은 채용, 인사, 해고 등과 관련된 사규를 말한다. 취업규칙 변경요건은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간주되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을 말한다. 한노총은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할 경우 노동조건 악화 등 사측이 원하는 취업규칙을 마음대로 도입할 수 있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정부 측은 임금피크제 도입 등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합의에서는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치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기로 했다.
통상임금 범위 산정
통상임금은 근로 제공의 대가로 통상적으로 지급받는 임금을 말한다. 이전에는 기본급만 통상임금에 포함됐으나, 2013년 12월 대법원 판결로 상여금·근속수당·교통비·식비 등도 통상임금에 포함됐다. 통상임금이 중요한 이유는 연장근로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연장근로수당은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하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범위가 커질수록 근로자가 받는 연장근로수당도 많아진다.
노사정은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키로 사전에 정한 일체의 금품‘이라고 정의했다. ’근로자의 개인적 사정에 따라 다르게 지급되는 금품‘은 제외하고, 이를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키로 했다. 시행령에 명시될 금품에는 보험료, 성과급, 초과이익 배분금 등이 포함될 수 있지만, 이는 여야간 합의를 통해 결정된다.
근로시간 단축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눌 수 있도록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된다. 지금까지는 근로기준법에서 주 12시간까지 허용하는 연장근로에 휴일근로가 포함되지 않았다. 정상근로 주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까지 합치면 최대 근로시간은 주 68시간까지 늘어났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제한하면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정상근로+연장근로)까지 줄여야 한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을 급격히 추진하면 임금 하락 등 부작용이 있는 만큼 기업규모에 따라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키로 했다. 노사 서면합의로 주 8시간 내의’특별연장근로‘를 4년간 한시적으로 허용한 후, 4년 후 지속 여부를 재검토한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연장은 노사정의 공동 실태조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대안을 마련한 후 정기국회 입법에 반영키로 했다. 노사정 간 이견이 큰 것을 고려한 타협책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35세 이상 기간제·파견 근로자가 원하면 노조위원장 등 근로자 대표의 서면 합의로 현재 2년인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자고 주장한다.
4년 후 정규직 전환을 안 하면 2년이 넘는 기간에 받은 임금의 10%를 ’가산 임금‘으로 근로자에게 주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지는 못할망정, 사용기간 연장이라는 일종의 ’면죄부‘를 줘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만 더 늘리도록 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파견근로 확대
정부는 현재 32개 업종으로 제한된 파견 허용 대상에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 용접·주조 등 일부 제조업을 추가하는 방안을 주장한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엄격한 파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동계의 반발은 거세다. 그렇지 않아도 파견 근로자가 비정규직 양산과 노동조건 악화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데, 이를 더 늘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얘기다. 이 사안도 노사정이 공동으로 대안을 마련키로 했다
청년고용 창출 지원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기업은 ’세대간 상생고용지원·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세무조사 면제 우대·중소기업 장기근속 지원·공공조달계약 가점 부여‘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키로 했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절감된 재원은 청년고용에 활용키로 했다. 고소득 임·직원은 자율적으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기업은 이에 상응하는 기여를 통해 청년고용 확대에 노력키로 했다.
대타협 합의 이후
노사정 합의안은 14일 오전 11시 열리는 한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통과해야만 진정한 효력을 갖는다. 일부 산별노조의 반발도 예상되지만, 한노총의 주장도 충분히 반영된 만큼 노사정 대타협이 중집에서 승인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새누리당은 노사정 대타협 내용을 반영한 노동개혁 관련 법안을 당초 예고대로 이번주 중 발의하기로 했다. 일단 14일 예정대로 당정협의를 열어 노동개혁 관련 입법 추진 사항을 논의하고 당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의원들의 연석회의 및 의원총회를 거쳐 오는 16일 관련 법안들을 당론 발의할 방침이다.
한편, 청와대는 13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위한 대타협에 이른 것을 조심스럽게 환영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아직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본다. 국민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사정이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이번 대타협은 첫 관문일 뿐”이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노동 개혁이 완전히 마무리된 것이 아니고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과제도 산적해 있다는 판단에서다.
새누리당도 이날 노사정 대타협 합의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당 노동시장선진화특위 위원장을 맡은 이인제 최고위원은 “노사정 대타협은 시대의 요청과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역사적 결단”이라면서 “노동시장이 대립에서 타협으로, 불안정과 경직에서 안정과 유연성으로 전환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은 예고대로 오는 16일 노사정 합의가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한 의견 수렴을 거쳐 소속 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이번 주 중 노동 개혁 관련 법안을 당론 발의하기로 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밑그림은 그렸지만 갈 길이 먼 합의”라고 평가했다. 새정치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기간제, 파견근로자 보호 방안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 관련 합의가 향후 과제로 남겨져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특히 “취업규칙 및 근로계약 해지 기준 명확화는 노사와의 충분한 협의가 전제됐지만 노사 현장에서 악용될까 매우 우려스럽다”면서 “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시도는 대기업 편향의 노동 개악으로, 우리 국민은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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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대진 대기자]